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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Journals, Hi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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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8
깊고 검은 강물에 나를 던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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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6
The Ma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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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3
내 어린 미나리꽝의 추억
아무리 앞을 향해
내딛으려해도, 때로는 삶 그 자체가 악마의 넝쿨처럼 사람을 옭아매고 또 조여들어온다. 지나간 것들과 다가올 것들이 짐이 되어 그
무게를 더할 수록 광활한 우주를 머리 위에 두고 점점 지표면에 고착되어버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고 싶었으나 갈 수 없었고,
나는 무거웠다. 멀리 내다보이는 앞에는 불투명한 스크린처럼 펼쳐진 안개 위에 여러가지 혼란스러운 영상들이 어지러이 뒤섞이고
있었다.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무엇이 될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불확실함이 싫었다. 되돌아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길 위에서, 심장 언저리의 비틀리고 억눌린 응어리를 느꼈을 때 나는 결심했다. 도망칠 수 없지만
도망치기로. 그것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카메라를 메고 무작정 열차에 올랐다. 평생을 살아온 곳이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오직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나는 삶의 밑바닥 그 바닥까지 떨어져 흐느끼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분명 내 문제는 그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내 앞의 안개 속에는 분명 그의 모습도 있었다. 눈을 뜨니 종로3가였다. 바보처럼, 매일 내리는 그곳에서
나는 다시 내려버렸다. 쏟아져 밀려오는 바지와 스커트들을 비집고 계단을 올라 나는 정확히 평소와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지하철
5호선 승강장에서 처음 들어오는 열차를 탔다. 딱히 갈 곳은 없었다. 도망쳐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도망쳐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위인은, 서점으로 들어가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사람이 한산한 문학코너에서 한강의 소설을 집어들고 읽었다.
주인공은 마치 타인인 것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왼손을 가진 남자였다. 그의 뜻과 다르게 움직이는 왼손은 자신의
뜻과 달리 모멸하는 직장상사에게 주먹으로 반항하고, 또한 자신의 뜻과 달리 오래 전 가슴에 담았던 다른 여자를 붙들어 그녀와의
섹스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는 직장과 가정을 잃었다. 통제할 수 없는 그 왼손은 그의 본심이자 본능이었고 그 왼손을 막기 위해
그는 이성을 따르는 오른손이 필요했지만 언제부턴가 한 몸에 달린 양손의 싸움에서 항상 이기는 것은 왼손이었다. 끝내 통제할 수
없는 왼손을, 그는 칼로써 못 쓰게 만들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어느 손인지 모르게 자신의 가슴 한 복판에 칼을 꽂은 그
자신이었다. 오른손과 왼손, 사회의지와 자유욕망은 그렇게 충돌했고, 세계는 그의 어쩌면 당연했을 욕망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의
가슴 한 복판에 꽂힌 칼은, 둘이 동시에 양립할 수도, 어느 한 쪽을 버리고 어느 한쪽을 온전히 취할 수도 없는 삶의 상징과도
같았다. 껍데기로 말하는 세상에서 어느 것이 옳은가를 나는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다만 이야기는 나의 응어리를 어루만졌다.
마음이 이끌린 나는 작가의 이름과도 같은 한강으로 발길을 옮겼다.
밤에도 사람들은 소란스러웠고 강물은 혼자서 고요했다. 강변 잔디 위에는 한 쌍의 남녀들이 여기저기 앉거나 혹은 널브러져
있었고 간혹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들과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반쯤은 취해있었다. 그곳은 말하자면, 도망친
자들의 소굴과도 같았다. 모두가 저마다의 가슴속을, 혹은 뱃속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강물에 토해놓고 있었다. 강물은 그저
고요함으로 던져지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따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도망쳐온 자들의 온갖 묵은 속내를 강물은 무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쏟아지는 사람들의 감정 앞에서 강물의 변함 없는 고요함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강가를 경계로 세상은 온통
소란스러운 사람의 세계와 오직 고요한 강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인간이 발을 딛을 수 있는 고체와 딛을 수 없는
액체의 밀도차 만큼이나 커다란 간극이 존재했다. 칠흑의 강가란 인간이 바라만 보되 가 닿을 수 없는 이세계와의 경계면이었다. 그
두 세계의 괴리를, 취한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나마 취기를 통해 오른손을 잠재우고 왼손을 자유롭게 한 그들은
물결 위로 부서지는 조명의 만화경과도 같은 현란함에서 역시 잠시간의 위안을 얻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취하지 않았고,
나에게 그것은 위안이 될 수 없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방적인 토로가 싫어서 나는 무엇인지 이름 모를 풀밭을 따라 강둑을
걸었다.
한참을 걸어서 다다른 곳에는 하늘과 물결이 한 가지로 어두웠고 세상과 강물이 또한 한 가지로 고요했다. 그곳에는 온통 검은
세상과 내가 있었다. 비록 어디서부터인가는 더 앞으로 내딛을 수 없는 공간이더라도 모두가 한 데로 고요한 이곳은 나를 던져도
받아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도망칠 때 두고온 나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나를 나는 깊고 검은 강물 속에 던져버렸다. 그
엄청난 무게조차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풍덩 소리 하나 없이 강물은 나를 삼켰다. 어쩌면 고요의 심연에 녹아버렸을지도 모를,
저 강물과 함께 흘러버릴 나를 수장시키고 나는 강바람에 휩쓸리듯 돌아섰다. 그래. 잊어도 돼. 이제 가벼워졌으니 저 검은 강 만큼이나 깊은 밤하늘로 나를 이끌어줄,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찾는 거다. 돌아오는 길에 고요함을 눈에 담고 싶어서 사진을 여러 장 찍어봤는데, 쓸 만한 것은 몇 장 없었다. 사진이야 아무렴 어떤가. 강은 내일도 고요할텐데.
NIKON D-80, SIGMA 17-70 f/2.8-4.5 .... out of focus.
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서울의 끝자락 동네
구파발이었다. 해가 높은 한낮부터 학교 끝난 아이들이 몰려나와 나뭇가지며 작대기를 가지고 흙장난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던 곳.
아직 시멘트의 냄새보다 삭고 마른 풀냄새가 진하던 그곳에서 하늘이 파랗게 개인 가을날이면 꼬맹이들은 빨랫줄 사이를 오가는
고추잠자리를 따라 두 손에 잠자리채를 걸머쥐고 잔돌이 굴러다니는 흙길을 걸었다. 서 넛이 모여 손을 잡고 무엇을 심었는지 모를
노랗고 파란 풀밭 사이길을 가로질러 야트막한 둑방을 지나면 세 살배기 아이의 키만한 미나리가 자라는 미나리꽝이 있었다. 초록빛
미나리가 가득 자라는 위에는 고추잠자리며 된장잠자리, 회색빛 노란빛 밀잠자리가 날았다. 이따금 진한 갈색빛의 길쭉한 말잠자리도
보였지만 알록달록 커다란 장수잠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곤충백과같은 것을 읽던 아이들에게 장수잠자리는 하나의 신비와도
같은 것이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그 신비를 찾아 하늘을 덮은 잠자리떼 사이를 잠자리채로 휘저으며 내달렸는데도, 흐드러지게 많은
색색가지 잠자리 속에 한 두 마리 쯤은 있을 법 하건만 장수잠자리만은 끝내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 미나리꽝은
하늘을 나는 것들을 쫓아 내달리던 유년기의 순수와 장수잠자리에 대한 동경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는 곳이다.
하루는 논길을 따라 너무 멀리 걸어서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데 길을 잃어버렸다. 어딘지 처음 보는 곳에서 예닐곱 꼬마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어떻게 길을 되짚어 돌아오다 만난 순경 아저씨를 따라 간 파출소에서 겨우 어머니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콧물을
훌쩍거리며 엄마 손을 꼭 잡고 돌아오는 흙길 위로는 하늘에 홍시빛이 짙게 번져있었다. 그 뒤로 나는 미나리꽝에 가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연신내 근처로 이사오게 되었다. 미나리꽝도 시멘트 담장과 황토빛이 함께 머물던 동네도 그
이후로는 다시 볼 수 없었다. 네모난 보도블럭 깔린 골목길이 미나리꽝을 대신해 내달릴 장소가 되어주었고 꼬마는 그곳에서 공놀이를
하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자랐다. 이십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고 한 때는 꼬마에게 온 세상이나 다름없던
동네도 검은 아스팔트로 덮여버렸다. 여섯살 꼬마에게 천자문을 가르치시던 예순 넘은 훈장님의 소식도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지나치는 발길이 동네의 초입을 지나면 그 인근은 통학버스가 서던 약국만을 남긴 채 모든 것이 변해있어서 차마 동네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변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분명히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 테지만, 나는 그 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으므로 알 수는 없다. 다만 몇 해 전 그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을 따름이다. 빌라와
단독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 동네에도 꽤나 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을 테지만, 하루 나절을 종일 집에 머물러도 바깥을 달리는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옆 집 앞 집 안에서 시끄럽게 쿵쾅거리는 소리가 한 집 건너 우리집까지 들려올 따름이다. 그
아이들의 세상은 그 집안이 전부일까. 평생을 가도 삭고 마른 풀의 냄새와 흙길 너머 하늘의 홍시빛을 모를 아이들이 이담에
추억하고 그릴 풍경은 어떤 것일까. 내 입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들어도 차마 상상이나 할 수 있을런가. 아직도
가을의 초입이면 그 시절의 미나리꽝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눈을 감으면, 시멘트 담장 사이로 황톳길을 지나서 풀밭을 건너 둑방
너머로, 아직도 개구리밥 동동 뜬 푸르른 미나리꽝에 행여나 발이 빠질까 들어가지는 못해도, 그 사이사이 뚫린 길을 신이 올라
내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위로 놀리듯 놀라듯 호기심 난 듯 장난기 어린 날갯짓으로 하늘을 덮은 색색가지 잠자리들도.
그리고 신비의 장수잠자리도. 이제는 있을 것만 같은데. 훌쩍 커버린 이제라면 잡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