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의 정문을 지나 도서관을 향하다 보면 건너편 대학원 쪽 한 켠에 온통 검은 현수막이 하나 붙어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끈다. 검은 바탕에 은색 글씨로 크게 써진 말은 '쌀 시장 개방 정부를 규탄한다! -사회과학대 학생회'.

  사물 혹은 어떠한 사회현상을 볼 때 우리가 판단하는 기준. 우리가 갖고 있는 관점은 무엇을 통해 형성될까. 사실 선명한 은색으로 표현된 사회과학대 학생회의 목소리에 나는 큰 공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이러한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분명히 '쌀 수입시장 개방'이라고 하는 한 가지 동일한 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의 시각은 원에 비유하자면 90도 이상 차이가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사건을 사회학도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고 나는 그 사건을 경영학도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장의 개방이라는 사건을 통해 피해를 입는 농민측과 그로 인해 벌어질 여러가지 부정적인 사회현상을 보았고 나는 시장의 개방을 통해 얻어지는 국가 전체의 경제적 수익을 보았다. 양측이 서로 주장하는 바의 내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우선순위에 대한 입장이 이렇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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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는 입장의 차이라는 점에 대해 매우 인색하다. 누군가 자신과 다른 해석이나 입장을 제시하였을 때 우리는 상대방을 '적'의 위치에 놓는다. 그리고 서로의 성품에 따라 흑돌과 백돌이 맞물리는 치열한 수 싸움이 이루어지거나 개울너머 윗, 아랫마을 견공들의 영역 싸움이 시작된다. 나라 안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가 이루어지는 국회 안이 이렇고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사건을 논하는 방송사의 공개 토론이 이렇다. 그리고 생각이 같은 이들끼리 한 데 모이면 이러한 싸움은 줄곧 "물러가라" "규탄한다"와 같은 말로 시작하여 "소새끼" "말새끼"의 육두문자로 끝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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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에서 오(吳)나라에 동맹을 맺으러 간 제갈량은 그 능숙한 언변과 논리로 오나라의 여러 이름 난 학자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게 만든다. 소설의 독자로서는 통쾌하기 이를 데 없는 장면 중 하나지만 제갈량이 한 것은 토론이 아닌 설전이다. 세 치 혀로 천하를 겨누는 그의 지모와 언변을 숭상한 나머지 있을 곳을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만약에 스스로 제갈량이고 싶다면 토론장이 아닌 전쟁터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토론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상대방을 보기 좋게 눌러서 자존심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한 편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칫 자신의 견해가 공격 받을까봐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이는 토론장이 싸움터로 잘못 왜곡된 사회 풍토에서 빚어진 문제다. 호전적인 사람은 토론장을 싸움터로 만들고 온건한 사람은 토론을 피하므로 통합된 의견도 방향의 모색도 요원해진다.

  모든 해석과 관점에는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상대방이 자신과 다른 견해를 주장한다면 이는 한 편으로 나 자신의 좁은 관점 밖으로 견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토론을 통해 그러한 입장을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다 못해 친구와의 사소한 전화 말다툼 속에서라도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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