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1.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 작품 2. 김영하: 너를 사랑하고도

1. 글머리에

  교란 유사성에 그 근거를 둔다. 비교를 한다 함은 즉, 각 대상이 서로 유사한 부분을 찾되 그 유사한 부분이 갖는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해내는 것이다. 비교 감상의 대상으로서『낭만적 사랑과 사회』, 그리고『너를 사랑하고도』의 두 작품을 선택한 까닭은 두 작품이 현대인의 연애 풍속도라는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역시나 서로 비슷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낭만적 사랑과 사회 - 연애 세태의 비판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사랑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손쉬운 성욕 해소의 대상으로 여성을 취하려는 젊은 남자들과 그들 사이에서 ‘성공적인’ 인생의 성취를 위해 자신의 처녀성을 무기 삼는 여자 유리가 있다. 그녀가 만나는 모든 남자들은 사랑과 섹스를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유리에게 섹스를 요구한다. 물론, 몸이 달아 요구하는 그 말 속에서 섹스는 사랑에 우선하기 때문에 그들이 내뱉는 ‘사랑해.’ 라는 말의 본질은 ‘섹스하자.’ 다.

  반면, 남자들이 성욕해소를 위한 수단으로 사랑을 팔아넘기고 있을 때 유리는 물질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취사선택을 사랑이라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킨다. 그녀의 사랑은 그녀가 상대하는 남자들을 학벌과 외모, 재력이라는 기준으로 재고 고른다. 처녀성은 그렇게 골라진 남성을 그녀에게 귀속시키기 위한 거래수단이며 그녀의 십계명은 그 거래수단을 허위와 가식으로 포장하는 도구다. 김경욱은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에서 ‘교환경제의 규칙을 교란시킨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가장 위협적인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사랑이다.’ 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사랑이라는 말 아래에는 ‘남성의 사회적 능력 = 여성의 처녀성’이라는 경제적인 교환 조건이 성립된다. 경제적 선택, 인간의 합리성을 흔들고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낭만적인 사랑은 이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제목은 반어적으로 세태를 꼬집는 수단이며 작가 비판의식의 선언이기도 한 셈이다. 성(性)심리에 대한 과감한 표현은 이러한 비판의식에 힘을 실어주고 그 현실성으로 독자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3. 너를 사랑하고도 - 사랑과 현실의 충돌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비판의식에서 연애 세태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면,『너를 사랑하고도』는 냉소적이라 느껴질 만큼의 현실적 접근을 시도한다. 남자 주인공 박영수는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 중 우연히 수영장에서 옛 동창 정인숙을 만나면서 연애감정을 느끼지만, 이렇다 할 방법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거친 수영강사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모습이나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토익 공부를 하는 그는 흔히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보통사람이다.

  여주인공 정인숙은 자존심 강한 여대생이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국회의원의 말단 보좌관, 그것도 이미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가난하고 볼품없지만 그만의 냉소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껴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온 그녀는 공교롭게도 그 못난 보좌관에게 차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몸을 더듬고 쫓아다니는 수영강사나 수영장에서 가슴이나 쳐다보는 옛 동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녀는 실연의 과거를 털어내려 일기를 찢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복학할 준비를 한다.

  보좌관은 매사에 현실적으로 일관하는 냉소적인 인물이지만 그 냉소 뒤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미모의 여대생과 불륜을 감행하는 열정이 숨어있다. 냉소라는 것이 어떠한 것이 가진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라면 냉소주의자는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무엇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보좌관에게 소중한 가치는 정치적 신조, 그리고 정인숙이다.

  평범하기도 하고 혹은 조금 벗어난 사랑을 하는 이들 모두는 아쉽게도 각자의 현실 앞에서 좌절을 겪는다. 박영수의 사랑은 아직 취업도 못한 볼품없는 학생이라는 현실적 장벽 앞에 가로막혀 이렇다 할 고백조차 못하고 멈춰 선다. 정인숙의 사랑은 불륜이라는 장벽 앞에 가로막힌다. 그리고 보좌관의 소신은 모시던 국회의원의 지극히 ‘현실적인’ 당적 이동 앞에서 사표와 함께 세단기로 빨려 들어가 산산조각 나고 만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의 눈앞에 닥쳐온 냉정한 현실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박영수는 어제와 같이 취업준비를 시작하고 정인숙은 지울 수 없는 과거를 일기를 찢음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위안 삼으며 복학 준비를 한다. 좌절된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보좌관에게 그의 친구는 의원에게 따라가겠다고 빌라며 현실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현실과 마주한 인간은 무기력하다. 주인공 모두는 박영수의 생각에 남은 ‘팔 다리 없는’ 토르소처럼 그저 살다보니 현실에 치여 원하는 ‘정상적인’ 모습과 멀어져버린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렇게 뛰쳐나가기 전까진 나도 멀쩡한 인간이었다구. 너 따위의 머릿속에 토르소로 남기는 싫었다구.’


4. 낭만적 사랑과 사회 - 남성적 사회에 희생되는 여성

  다시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살펴보자. 소설의 현실은 남녀 모두의 사랑을 온통 거짓으로 만들어버리지만, 그 안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는 존재한다. 내용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과 행동 속에서 가해자는 남성이다. 비디오방에서, 스포츠카 안에서 기회만 생기면 유리에게 섹스를 요구하는 것이 남성이다. 피임으로 여성을 배려하기 보다는 미묘한 감촉의 차이 때문에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 여성을 임신시켜놓고 나중에 발뺌을 하는 것이 남성이다. 유리는 친구의 임신 이야기에 임신한 여자의 대책 없음과 임신 시킨 남자의 뻔뻔스러움 모두를 탓하지만, 대책 없는 행동은 인물의 성격적인 것으로 결코 의도적인 것이 아니다. 오직 뻔뻔스러움만이 의도적인 행동이다. 이렇게, 여성에 대한 배려 없이 오직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남성의 폭력성은 유리와 그녀가 선택한 남자 ‘그’의 섹스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초야의 십계명까지 동원하며 상품 포장에 여념이 없는, 그러나 남자의 눈에는 오직 순결해 보이는 그녀에게 그는 아무런 전희 없이 그냥 삽입할 뿐이다. 여성을 위한 남성의 전희는 완전히 배제된 채로 오직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 하는 단순성, 배려 없는 폭력성은 ‘너 되게 뻑뻑하더라.’라는 그의 무책임한 발언에서 절정을 이룬다.

  반면에 여성인 유리는 비록 처녀성을 도구삼아 남자를 고르고, 그를 위해 치밀하게 계산하며 연기하는 위선적인 인물이지만 그러한 그녀의 모습은 남성의 성적 폭력성이 지배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순수를 잃어버린 피해자의 모습이다. 그녀가 오럴섹스를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섹스를 요구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이며 그녀가 처녀성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처녀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위해서 처녀성을 넘기는 그녀의 선택은 이러한 사회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은 남성 독자들로 하여금 그녀를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소설 속 방어요소다. 그리고 최후의 보루와 같았던 처녀성을 바친 대가로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런 보장도 없는 루이뷔통의 핸드백뿐, 그녀가 원한 미래에 대한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서로 사랑한다고 세뇌하듯 자신을 위안하는 모습은 여성현실에 대한 동정적 시각이기도 하다.

  이러한 남성 비판적, 여성 동정적인 시각은 성 풍속도에 대한 과감한 묘사와 더불어 기성에 반발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하는 젊은 여성작가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시각이 이와 같이 한 편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소설은 현실문제의 공평무사한 비참함을 보여주지 못한 채 냉소로 일관한다. 현실에서 남성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요소에 대한 고찰 없이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지는 전개는 이 작품이 고발적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한 꺼풀 더 너머에 있는 이면까지 파헤치지 못한 모습이 되어 보다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시키지 못한다는 약점을 낳는다.

  또한 아직은 일부 지역 혹은 일부 계층에 국한된 상황을 극단화시켜 표현한 것은 부분을 전체로 받아들이게 하는 과장의 문제점도 끌어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비판 의식을 독자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구조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은 독자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는 가책에 대한 반발심리 같은 것으로 소설의 내용이 어느 정도는 사실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자로 하여금 인정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소설쓰기는 목적의식에 맞게 글을 엮어나가는 뛰어난 작가적 역량의 발휘라고 할 수 있다.


5. 너를 사랑하고도 - 현실 장벽 앞에서 저항하지 못하는 인간

  사랑을 둘러싼 이야기, 그리고 현실적인 시각에서의 냉소적 서술이라는 점에서 정이현과 김영하는 공통된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다. 각자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 저항하거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그 안에 젖어서 살아가는 모습은 유리의 모습이며 또한 박영수의 모습이다. 그러나『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사랑’을 둘러싼 현실의 모습에 초점을 두었다면『너를 사랑하고도』는 사랑 이야기를 매개로 현실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작품 내에서의 사랑은 비현실적이다. 정인숙의 성격과 눈높이, 그리고 그에 대조되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지만 박영수는 정인숙을 사랑한다. 이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비현실적인 사랑이다. 정인숙의 사랑 역시 불륜이라는 비현실적 사랑이다. 그리고 보좌관의 정인숙에 대한 사랑, 정치적 신념 역시 실제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힘싸움의 판도에 따르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현실들은 진심으로 상대방을 걱정하는 사랑으로, 사회적 조건과 편견을 넘어선 순수한 사랑으로,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신념으로 순수하며 귀하다. 이러한 인물들의 순수성은『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보이는 인간의 속물적 모습과 상반된다. 소설은 고귀한 비현실들이 현실 앞에 부서지는 모습에서 합리성과 이익본위로 상징되는 현대사회의 풍토가 인간이 꿈꾸는 작은 이상에 얼마나 큰 장벽이 되는지를 보여준다.『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인물들이 순수를 잃었기 때문에 사회의 병폐에 젖어서 살아간다면『너를 사랑하고도』의 인물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좌절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시사의 과정은 짧고 간결하며 담백한 표현으로 이루어진다. 일어난 사실을 툭툭 던지듯 이야기하는 문체는 독자에게 그러한 현실 모습을 거추장스러운 꾸밈을 배제하여 전해준다. 때문에 소설은 다분히 현실적이며, 가감승제 없이 현실을 말한다는 점에서 냉소적이다.

  그러나 냉소적, 비판적이라는 공통점 하에서도 두 작가의 달라지는 시선은 현실적 좌절에 대한 인물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모든 것을 건 처녀성의 거래에서 실패했다 느꼈을 때 유리는 애써 자신을 위안하는데 이것은 현실에 대한 기피성 행동이다. 작가 정이현은 이 부분에서 또 한 번의 비판을 가하고 목적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박영수는 좌절된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앞날을 준비한다. ‘취업을 하면 뭔가 나아지겠지. 나는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한 단어 한 단어에 집중하며 앞으로 전진했다.’는 말미의 대목에서 작가 김영하는 당장은 현실의 장벽에 좌절하려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언젠가의 앞날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희망적인 인간의 자세를 보여준다. 때문에『너를 사랑하고도』는 냉소의 단순성을 탈피하여 잔잔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 된다.


6. 맺음말

  세상이 다변화하는 만큼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다양해진다. 무(無)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획일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현실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덕분에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를 갖고도 이와 같이 시각이 다른 두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본다. 작가의 시각 이상으로 다양한 것이 독자의 시각이기에 한 편의 입장에 서서 작품에 대한 호오나 장단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남성적 사회에서 피해자가 되는 남성의 모순적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시각은 정이현 작품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으며, 진전을 위해서는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김영하가 가치파괴에 대한 냉소 일관에서 탈피하여 보다 진지한 목소리를 내면서 작품세계를 넓히게 된 것과 비교할만하다.

  그리고 두 작가 모두 실험적인 글의 구성과 문체의 사용으로 기존 소설의 단순한 서사구조를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작가적 역량과 더불어 문학의 발전성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며, 작가 자신만의 차별화된 장점이 되어 기성 권위의 파격이라는 사회풍토를 반영한 직설적인 표현과 어우러져 소설적 재미를 이룬다. 특히 직설적인 현실투영을 통한 공감대 형성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소사를 공유하면서 일상적인 사건들에 공감하고 환호하는데 익숙해진 요즘의 독자들이 이 소설들에게 큰 호응을 보낸 중요한 이유라고 여겨진다. 또한 이러한 점은 서사적 감동 위주의 장편 쓰기가 가져다주지 못하는, 현대 단편 쓰기만의 강점이라고도 하겠다.
,